히스토리 교회

[사순절 묵상] “적지 않게 위로를 받다”

“적지 않게 위로를 받다”

길르앗에 살던 디셉 사람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예언자가 되어 이스라엘 전역에 가품을 예고했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호하시려고 그에게 갈릴리 북서쪽의 항구도시 시돈에 인접한 사르밧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한 과부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어려운 형편에도 엘리야를 정성껏 대접하여 더 이상 먹을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고서 얼마 뒤에 과부의 아들이 시름시름 않다가 죽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예언자를 모신 일이 도리어 자신에게 재앙이 되었다고 여깁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들추어내섰다고 한탄하며 자책합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삶의 모순성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엘리야는 과부의 불행이 하나님과 만난 경험의 결말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께 간청하여 그녀의 아들을 다시 살리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이에 사르밧 과부는 “이제야 저는, 어른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시라는 것과, 어른이 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왕상 17:24)라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이스라엘 사람 중 누구도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바울은 한 주의 첫날, 곧 우리가 주일이라고 부르는 일요일에 신앙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는 거기에 모인 사람들과 토론을 하며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밝히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다음 날 떠나야 했기에 토론은 밤이 깊도록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3층 창문에 걸터앉아 있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떨어져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복음을 듣기 위해 피곤을 무릅쓰고 모임에 간 그 청년을 두고 졸았다고 타박할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엘리야가 한 것처럼 기적적으로 그를 소생시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 유두고를 보고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다.”라고 합니다.

이 두 이야기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과 기적을 경험한 후라도 우리에게 불행이 닥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주님의 일을 하다가도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동시에 그 불행이 우리 이야기의 결말이 아니라고 일깨웁니다. 우리의 결말은 주님의 은혜로 생명이 살아나고 더욱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순절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우리 삶 가득히 배어 들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I 같이 하는 기도 I

주님,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면서도 우리에게 닥쳐오는 불행 과 불운에 겁을 먹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것을 인도하고 주관하시는 분이 며. 우리의 마지막이 비극이 되도록 방치하지 않으실 것을 믿습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렸고, 바울은 유두고를 살렸습니다. 그 소생이 당시 사 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듯, 우리에게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강하게 하 시고, 성령님의 위로와 능력을 여실히 체험하며 살도록 이끌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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