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교회

[사순절 묵상] “다시 보다”



“다시 보다”

누군가는 사도 바울이 기독교를 만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물론 바울이 위대한 사도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법인 율법을 공부하는 데 열정적이었던 바리새인으로, 모든 유대인이 여호와 하나님의 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구원을 펼쳐 이방인의 압제로부터 유대 민족을 해방하시고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신다고 믿었습니다. 바울이 이를 위해 하지 못할 일은  없었습니다.  

그는 다마스쿠스로 가서 그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오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처럼 단호하고 추진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바울에게 예수께서 나타나십니다. 바율이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습니다. 그가 땅에 엎어지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주님, 누구십니까?”라는 그의 물음에 예수님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고 답하셨습니다.(행 9:4-5 참조)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감동적인 지점을 발견합니다. 

첫째, 바울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예수님을 핍박한  적이 없었고, 이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않으신 분을 핍박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분의 형제자매, 곧 그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것이 바로 자신을 핍박한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협박하는 지극히 작은 사람 한 명 한 명을 자기 자신이라 선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를 고이시고 아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박해자인 바울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꾸으짖으시거나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되려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자신을 핍박하고 반대하는 바울을 무자비하게 대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후 사 동안 바울은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 아나니아를 바울에게 보내셨습니다. 아나니아가 안수할 때 바울의 눈에서는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그의  시력이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인생을, 세계를, 그리스도를, 그리고 성부 하나님을 다시 보는 눈을 얻게 된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바울은  곧바로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며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곧 여러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였다.”(20절)고 기록합니다. 

사순절을 맞는 우리 역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되려 하나님의 일을 지연시키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우리를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아울러 우리에 눈에 붙여진 세상과 욕심의 색안경이라는 비늘이 벗겨져 새롭게 주님을 뵈옵고 믿음이 새로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우리 눈에서도 비늘 같은 것이 벗겨져 주님을 온전히, 그리고 제대로 보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우리를 변화시키셔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부정적인 것들, 우리를 미혹하게 하는 것들, 우리가 움켜쥐었던 것들의 실체를 제대로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믿음의 눈을 갖는 사순절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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