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교회

[사순절 묵상]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요한복음 1:1-18은 흔히 ‘로고스 찬가’라고 불립니다. 우리말로 ‘말씀’으로 번역된 로고스를 기리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이 로고스는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했고, 또 만물이 창조되기 전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합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로고스는 종종 ‘도'(道)라고  번역되었습니다. 한자 문화권에서 ‘도’는 단순히 길이 아니라 우주의 생성 원리이자 인간의 규범을 의미합니다. 헬라어 ‘로고스’ 역시  고대 그리스 철학과 사상에서 ‘말’에 국한되지 않고 우주의 원리나  질서, 이성 등을 일컬었습니다.  

요한은 로고스가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며, 이 로고스로부터 만물이 창조되었고, 창조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다고 선언합니다. 그렇다면 로고스를 떠난 것은 어떻게 될까요? 생명의 원천인 로고스와 단절되니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잠시는 살아 있는 듯 보이나 실제로는 죽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로고스가 품은 생명은 사람들에게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그들은 빛을 따라, 그 빛을 만든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이 생명을 품었고,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 되었고, 마침내 빛이 혼돈과 죽음의 어둠을 비추있습니다. 이때 어둠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요한복음은 두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 단어를 정교하게 사용하여 어둠의 반응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게 합니다. 개역개정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번역합니다. ‘깨닫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텔라벤은 ‘이기다’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새번역과 공동번역은 이 문장을 각각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새번역)와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공동번역 개정)로 번역합니다. 어둠은 빛을 깨닫지도 못하고 이기지도 못합니다.

어둠 그리고 어둠에 속한 존재와 달리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로고스에 대해 달리 반응합니다. 바로 빛을 증언하는 것이지요. 대표적인 예로 세례 요한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빛을 증언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이자 말씀인 그 빛을 믿게 했습니다.  

말씀과 생명과 빛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어둠, 이 둘은 여전히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 역시 ‘증언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이번 사순절을 맞이하여 어둠에 갇힌 삶이 아니라 말씀과 생명, 빛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세례 요한처럼 빛을 증언하는 사람으로 복음을 전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머무셨던 주님 그리고 영원히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 우리가 어느 곳에서든지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그 영광이 우리에게 빛이 되고 생명이 되어 우리가 날마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 땅에 보냄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시며, 삶 전체를 통해 주님을 증언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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