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교회

[사순절 묵상] “구원과 은혜는 하나님의 것”

구원과 은혜는 하나님의 것

요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야웨 하나님을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셔서, 내리시려던 재앙마저 거두실(욘 4:2)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뜻을 돌이켜 이스라엘을 다시 품으셨습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닙니다. 요나 역시 하나님을 반역했지만, 그가 돌이켜 회개하자 하나님은 그의 간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반역을 용서하시는 하나님,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요나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에 결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면서 말입니다.

“주님, 이제는 제 발내 목숨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3절)

니느웨 사람들이 재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해를 누리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는 것입니 . 이스라엘과 요나가 찬양하던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사랑이 한이 없다’는 하나님의 속성이 이번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는 주제넘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대상과 그렇지 않을 대상을 자기 마음대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맺는 관계에 따라 임의로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을 제한할 수 없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밖으로 나가 초막을 짓고 그늘에 앉아 그 성읍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려고 합니다. 아마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켜 그 도시를 진멸하시기를 기대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요나의 성마른 태도를 비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 다. 바로 우리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도시에 사는 12만여 명을 언급하십니다. 많음을 뜻하는 상징적인 수입니다. 그들은 많지만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의 도덕적, 종교적인 분별력이(이스라엘보다) 부족했기에 요나가 그들을 깔보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자비를 베푸셨습니다.(요 7:49 참조) 우리는 요나를 보면서 분노에 사로잡혀 협소해진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같이 하는 기도]

주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에 우리는 너무나 옹졸합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정직하고 깨끗한 영을 창조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가시투성이인 마음을 이고 지며 사는 인생밖에 안됩니다. 주님, 우리 안에 주님의 은혜를 담아주시고 그 은혜를 통해 우리가 넓어지고 깊어지게 하소서. 그 은혜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간청을 들으시는 주님, 우리가 사이가 좋지 않는 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간청 역시 들어주시고 서로 품고사는 세상이 오게 하옵소서. 그 일을 우리 먼저 하게 하는 사순절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