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교회

대림절 묵상 12월 23일 “주님, 당신이 아십니다”

12월 23일 “주님, 당신이 아십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조직신학 코스를 밝거나 교리를 줄줄 외우는 것에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깃은 예수님과의 관계다. 예수님이 나를 아시고 사랑하시기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를 직접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해변에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신 후 베드로와 둘만의 대화를 하셨을 때다. 이 대화를 통해 베드로는 믿음을 회복하고 사명을 받았다. 하지만 이 대화는 무엇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잘 아시고 보살피시는지를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최대 관심사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이었다.

이 대화 속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 질문을 반복해서 하셨다. 그 질문은 단순히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결단을 요구한 것이었다. 예수님이 이 질문을 반복해서 하신 것은 베드로가 세 번이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부인한 것을 생각나게 했다. 베드로는 이 질문을 통해 얼마 전 자신이 그리스도를 항한 사랑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기가 한 일을 내밀 수가 없었다.

우리도 자신이 넘어졌던 시간을 떠올려보먼 같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하실 때, 우리 또한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내밀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베드로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 앞에서 유일하게 내밀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자신의 전지하심(omniscience)이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처럼 우리가 유일하게 호소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이해심 많은 마음이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를 좌절시킬 수 있고, 환경은 우리를 흔들고 넘어뜨릴 수 있으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약해질 수 있지만, 예수님이 우리 마음을 아신다는 그 사실 안에서 우리는 안심할 수 있다! 그분은 우리 마음이 실패할 것과 우리 믿음이 약해질 것을 아신다. 하지만 우리의 실패가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바로 그 이유다.

회복이 필요하지만 우리를 변호할 말이 하나도 없을 때, 우리가 가진 놀라운 소망은 “주님, 당신이 아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에 다시 불을 지펴야 하는데 불을 붙일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가 가진 놀라운 진실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잠시 시간을 내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친밀한지 깊이 생각해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실패를 짊어지셨기에 우리는 죄에 대해 죽었고 그분에 대해 살았다(벧전 2:2).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계속해서 관계 맺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완벽하게 사랑하신다.

그분을 사랑하는가? 그분이야말로 가장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시다.

대림절을 하루 남겨둔 우리에게 깊은 생각을 하게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오신 주님, 우리를 사랑하셔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는 우리이기를 기대한다! 우리와 더 친밀해지기를 원하시는 예수님께 온 마음을 열고 더 깊은 믿음의 분량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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