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교회

대림절 묵상 12월 20일 “고백과 안도감”

12월 20일 “고백과 안도감”

우리가 자신의 죄를 습기려는 시도를 민추면 하나님은 기꺼이 그 죄를 덮어주실 것이다. 다윗이 밧세바와 지은 간음죄(혹은 강간에 더 가까운 행위)는 그것을 숨기려다가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다윗은 그 죄를 숨기려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은 꽤 잘 동하는 것 같았다. 다윗은 밧세바와 결혼했고,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없는 듯했다. 기만과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다윗은 그 죄를 잘 숨겼다고 생각했다. 죄는 종종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속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매우 다를 때가 많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아신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셨다. 그런데 나단 선지자는 곧바로 직설적으로 다윗을 정죄하지는 않았다. 그는 짐승을 많이 가진 부유한 한 사람이 양한 마리 밖에 없는 가난한 자의 앙을 불의하게 빼앗은 이야기를 다윗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다윗은 역울한 일을 당한 그 사람을 동정하며 부자의 행동에 분노했다. 그때 나단 선지자가 급소를 찌르는 말을 전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라는 이 네 마디는 정말 놀라운 은혜의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종 다윗이 자신의 죄에 편안하게 안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직면하는 것은 불쾌하고 어려운 일이있지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신 것은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격이 없있지만 하나님이 기회를 허락하셨고, 다윗은 겸손과 회개로 응답했다. 하나님이 개입하셨고 다윗이 고백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절망과 죄책감이 아닌 구원과 은혜로 끝날 수 있있다 (참조. 시편 32:5-6. 데릭 키드너 Derek kidener)는 이렇게 말한다. “시인할 때 느끼는 안도감, 그리고 거기서 만나게 되는 은총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사실이다. 우리가 자신의 죄를 덮으려는 시도를 그만두면 자신의 평판이 바닥을 칠까 봐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부도덕이 틈타도록 허용한다면, 이 감시하는 세상의 눈으로부터 얼마나 잘 감추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감시하는 세상은 아무 상관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추적하셔서 우리가 불순종과 반역 안에 편안하게 머물지 못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다. 우리에게 나단 같은 선지자를 보내지는 않으시겠지만. 우리 앞에 는 하나님의 말씀이 열려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히 4:12-13).

이 말씀을 기록한 사람과 읽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말씀 앞에 선다. 하나님이 우리 죄를 드러내시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 아들의 피로 덮게 하기 위해서다.

지금 하나님께서 지목하시는 죄가 무엇인가? 그것을 변명하거나 합리화하거나 숨기려고 하는가? 이제는 시인하고, 숨기려는 행동을 멈춰야 할 때다. 죄의 대가는 용서의 유익을 넘어서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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