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교회

대림절 묵상 12월17일 “꼭 필요한 시련”

어떤 경험의 영역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미술에서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원근법이 도움이 된다. 원근법이 있어야 컵은 비워진 것처럼 보이고, 의자는 공중에 뜬 게 아니라 바닥에 딱 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삶의 시련에서도 바른 반응을 하려면 바른 관점이 요구된다. 시련에 대한 바른 생각이 없이는 바르게 반응할 수 없다.

시련은 예수님만이 소망이시라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수단이다. 시련은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려준다.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는 확신을 갖기 쉽다. 하지만 바퀴가 떨어져 나갈 때(가정이 흔들리고 몸과 마음에 이상이 생기고 삶의 희망이 무너질 때)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 아닌지 비로소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이 진짜라는 것이 증명될 때는 기쁨이 있다. 그런 믿음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기 때문이다(벧전 1:7).

시련은 또한 우리 믿음의 성장을 측정(정체되어 있는지 성장하고 있는지)해준다. 실망스럽고 가슴 아픈 상황에서 전에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전에는 미처 몰랐던 그리스도의 진가를 배우게 되는 것처럼, 시련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더 커지고 성장한다. 한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환난의 바람은 오류와 위선과 의심이라는 껍질들을 다 날려버리고 진짜 중요한 인격이라는 알곡만 남게 한다.”

시련은 또한 지구력을 키워준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몇백 미터를 뛰는 단거리 경기가 아니다. 인생을 걸고 뛰는 크로스컨트리 경주다. 마라톤 선수들은 뛰면서 어려움과 탈진을 경험하지만 계속해서 뛴다. 그들은 뛰면서 느끼는 괴로움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어려움 뒤에 결승선이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시련도 이와 같다. 우리는 이런 시련을 통해 영적 경주에 필요한 인내를 기르게 된다.

부드러운 눈과 따스한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유심히 보라. 그들이 많은 시련을 넘어오면서 그러한 사랑의 경지에 다다랐음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노력 없이 결과만 원하기는 쉽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고통이라는 토양에서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신다.

자신에게 질문해 보라. “나는 이것을 믿는가?” 그렇다면 인생의 어려움을 바라보는 관점과 반응은 놀랍도록 변할 것이다. 시련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과 두려움과 불확실함이 가득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시련을 통해 나의 영적 인내심이 자라고 있으며 결승선에 도달할 능력이 향상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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