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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묵상 12월13일 “많은 사람의 대속물”

12월13일 “많은 사람의 대속물”


누구나 밀렸던 청구서 대금을 완불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청구서라는 것은 일종의 빚 같은 것으로 이미 사용했거나 사용하게 될 댓가를 치루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금액을 완전히 지불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마음 편히 사용하고 또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청구된 금액을 지불하면 ‘지불되었음’ 혹은 ‘계산완료” 라는 글귀가 찍히면 마음의 부담이 사라진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라고 언급하신다. 몇몇 구약성경의 구절들을 보면 예수님이 여기서 사용하신 “대속”이라는 말의 맥락을 엿볼수 있다.


유대 법은 누군가의 황소가 사람을 죽이면 그 황소와 주인이 둘 다 죽음에 처했다. 그러나 그 주인에게 몸값(대속)이 부과된 경우에는 그 돈을 내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출 21:29-30). 다시 말해, 황소의 주인은 얼마의 돈을 내고 자신의 목숨을 살 수 있었다. 친척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키지나 저당 잡힌 밭과 재산을 되찾을 때도 이와 같은 규칙이 적용되었다(레 25장). 이처럼 누군가를 포로의 상태에서 풀어주기 위해서는 결정적이면서도 값비싼 개입이 포함되는 대속이 필요했다.


구약에서 대속이 필요한 이런 모든 상황은 물질적인 곤경이지만,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도덕적인 곤경이다. 우리는 죄의 노예로 사로잡혀서 하나님께 반역했다. 예수님은 오직 당신의 결정적인 개입(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우리의 목숨을 사는)으로만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온전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하셨다. 한 찬송가 작사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분이 내 죄와 내 슬픔을 가져가
서 자기 것으로 만드셨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대속물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 이제 우리는 그분을 신뢰할 때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할 심판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요19:30)고 외치셨을 때, 헬라어 ‘테텔레스타이'(tetelestai)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이는 이미 값이 “지불되었음”이란 뜻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부활을 통해 이미 지불했음이란 영수증을 끊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청구되기에 우리가 갚는 것이 마땅하나 우리가 갚기에는 너무나 불리하고 큰 액수인 액수이기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미리 ‘지불완료’해 주신 것이다.


때때로 사탄이 우리를 대적하거나, 우리 자신의 마음이 우리를 고소하기도
할 것이다.

“너 정말 용서받은 거야? 이건 확실히 죄가 너무 크지 않니? 하나님이 정말로 너를 사랑하실까? 정말로 영원히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될까?”

이런 속삭임이 들릴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정의의 심판대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우리에게 불리한 판결을 다 해결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런 고발에 대가
를 치르라고 다시 요구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 안에서 온전히 안
심할 수 있다. 우리의 빚은 단번에 해결되었다. 우리의 몸값은 예수님이 친히 갚으심으로 충분히 지불되고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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