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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1 사순절 묵상 34 “기독교 문서운동의 산실”

2023.04.01 사순절 묵상 34

“기독교 문서운동의 산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이사야 41:8-9)

아름다운 소식, 복음을 전달하는 방식은 여러가지 입니다. 말로 전할 수도 있고 글로 전할 수도 있습니다. 말로 하면 그 시간,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만 듣지만, 글로 하면 장소와 시간을 초월해 널리 전하고 또 오래 전할 수 있습니다. 하디가 후반기 사역을 문서 선교에 집중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1923년 8월 연회에서 하디의 임지가 조정되었습니다. 신학교 교장은 사임했지만, 교수로 계속 재임하면서 피어선기념성경학교 교장과 석교교회 담임을 겸했습니다. 신학교 기관지 <신학세계> 편집도 계속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새로 ‘조선예수교서회’편집 사업 및 성경 번역 사업을 맡았습니다. 1890년 초교파 문서 선교 연합기관으로 설립된 조선예수교서회(현 대한기독교서회)는 편집 기능을 강화하면서 하디에게 편집부장직을 맡겼습니다. 그는 3.1운동 때 옥고를 치러 취직이 어려웠던 최상현과 김태원을 직원으로 채용해 번역과 편집 실무를 맡겼습니다.

하디는 1924년 12월부터 초교파 교회 신문인 <기독신보> 발행 겸 편집인도 맡았습니다. 1915년 12월 창간한 <기독신보>는 복음주의선교연합공의회(장로교회와 감리교회 6개 선교회가 참여)에서 발행하는 주간 신문으로, 예수교서회 편집과 인쇄 실무를 맡았습니다. 하디는 <기독신보>사장으로 취임하여 10년 동안 봉직했습니다.

“하디는 <기독신보>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계속 발전하려면 각 교인 가정마다 종교 신문을 지속적으로 배달시켜 사악한 영향력에서 가족을 지켜내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세속 신문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는 사람이라면 비록 주간 신문이지만 기독교 신문이 꾸준히 배포됨으로 사악한 영향력을 제어하고 소멸시킬 수 있음을 알 것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출판의 자유가 제한된 곳에서 기독교 신문이 바른 정보와 교육의 매체가 되어 교인들의 영적 생활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곁길로 나가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하디는 1920년대 일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허무주의와 쾌락주의, 타락을 조장하는 세속 잡지와 신문의 사악한 영향력에서 교회와 기독교인 가정을 지키는 ‘방부제’로서 <기독신보>의 역할을 중시했습니다. 또한 그는 <기독신보>를 통해 한국인 필자를 발굴했습니다. 이로 인해 일제 강점기에 기독교 문한과 신학계 진도자로 활약한 전영택, 조상옥, 김창준, 김영구, 김필수, 조병옥, 홍병선, 변성옥, 이명직, 김인영, 한치진, 채필근, 정경옥, 송창근, 이환신, 김활란, 장정심, 이용도, 김재준 등이 <기독신보>를 통해 이름과 사상을 세상에 널리 알렸습니다.

예수교서회가 종로에 새 사옥을 건축하기 전이라 하디는 냉천동 신학교수 사택에 업무를 보았습니다. 예수교서회와 <기독신보>, <신학세계> 편집부 직원들의 일터가 된 하디 사택의 1층은 1920~1930년대 한국 기독교 문서운동의 산실이 되었습니다.

묵상

  1. 복음을 글로 지혜롭게 전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2. 최근 감명 깊게 읽은 기독교 서적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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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가 개발되는 과정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첫번째 과정은 재능이 달란트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너무 당연해서 신기할 정도는 아닙니다.

두번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달란트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실력도 없고 소질도 없지만, 너무 좋아하고 생각나고 하고 싶어서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달란트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필요성을 느낄 때입니다. 흔치는 않지만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경우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자녀나 가족 중에 누가 아파서 도움을 주기 위해 하다보니 달란트가 되어 가는 경우입니다.

마지막 네번째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달란트가 되어갑니다. 우리는 이를 ‘사명’, 혹은 ‘비전’이라고 합니다. 말씀 전하는 것, 해외의 타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느 것, 아이들 가르치는 것, 청소년을 선도하는 것…. 이외에도 부르신 그 자리에서 사명 잘 감당한 것 밖에 없는데 나중에는 그것이 실력이 되고 재능이 됩니다.

우리의 삶이 나만을 위한 삶의 여정이 아니라 주변을 이롭게 하고 힘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우리 역시 생명살리는 복된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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