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교회

03 대림절 첫 주 11/ 29 화요일 “새로운 풍요를 누리다”

02 대림절 첫 주 11/ 29 화요일

“새로운 풍요를 누리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리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마가복음 6:42-43

마가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가장 인상적인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드러내시고자 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바로 오천명을 먹였던 그 일 말입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러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무리를 보시고 친절을 베푸셨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삶이 나아기지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복음과 하나님의 넉넉한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후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오천 명이나 되는 큰 무리를 말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취하셨습니다. 성인 남자 한 명의 도시락 분량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취하시어 주인으로서 , 불쌍히 여기시며, 넉넉히 행하셨습니다. 그분은 평범한 도시락으로 참 좋으신 하나님의 넉넉함을 드러내는 성찬을 행하십니다. 마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막 6:41)

평범한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기도는 성찬식을 이루는 네 가지 동사로 구성됩니다.

“그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나눠 주셨다.”

예수님은 일상의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고작해야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하나님의 헌신과 넉넉함으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그 결과 “다 배불리 먹게”(막 6:42) 되었습니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모두에게 충분한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교회, 즉 제자들은 언제나 한발 늦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새로운 정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기 싫어하고, 예수님께서 세상을 변화시키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기존의 구습을 버리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종종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곤 합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여전히 팍팍하고 불안하며 두려움과 탐욕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육신이 선포하는 바를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찬식 때마다 상기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풍요로운 곳을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선물을 베풀어 주시고,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들은 그분이 주시는 풍부함에 힘입어 넉넉하게 행합니다.

우리의 매일매일이 그리고 하루하루가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서, 나눠주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고도 남는 그 넉넉함에 할말을 잃게 됩니다. 눈이 있는 자는 보고, 귀가 있는 자는 듣고,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자는 새기라고,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는 나눔을 위해 충분하고도 넘치도록, 채우고 또 채우고도 넘치도록 받습니다. 그리고 끝없이 베푸시는 그분 안에서 기뻐하도록, 그렇게 받고 또 받습니다.

기도

끝없이 베푸시는 하나님,

우리가 당신의 넉넉함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하소서.

우리의 눈이 하나님의 풍요로움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귀가 들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이 기억할 수 있도록,

그래서 그 풍요로움을 세상에 나누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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