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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4 사순절 묵상 03 “땅 끝까지 이르러”

2023.02.24 사순절 묵상 03

“땅 끝까지 이르러”

‘땅 끝’은 단지 가다가 막힌 곳이 아닙니다. 한번도 가 보지 않은 곳, 낯설다 못해 적대적인 곳,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는 성령의 능력을 덧입지 않고는 사역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디는 첫 선교지 부산에서 그런 위기를 느꼈습니다.

하디는 1890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토론토의과대학이 기독교청년회 학생 중심으로 설립된 선교회와 8년간 연 750달러 선교비를 지원받기로 하고 한국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특정 교파의 선교부 파송을 받지 않은 독립 평신도 선교사 신분이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하디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부가 경영하던 서울 제중원(현 세브란스병원)에서 6개월 동안 일했습니다. 그리고 후임 의로 선교사가 도착하자 의사가 없는 한반도의 ‘땅 끝’ 부산으로 옮겨 갔습니다.

부산에 갔을 때 하디가 유일한 의사요, 선교사였습니다. 그런데 일년 만에 미국 북장로회와 호주 장로회의 개척 선교사 10여 명이 합류했습니다. 하디 부부는 이 선교사들이 부산에 자리 잡을 때까지 집을 내주며 함께 지냈습니다. 그때 하디는 장로교회 선교사들이 본국에서 받는 선교비(연 1200~1500달러)의 규모를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선교사임에도 ‘가난한’선교사와 ‘여유 있는’ 선교사로 나뉘었던 것입니다. 하디가 본국 선교회에서 달마다 받는 60달러 가운데 받을 집세로 내면 네 가족 살기에 늘 빠듯했습니다. 의약품도 부산해관 촉탁 의사로 일하면서 겨우 마련했습니다. 그는 선교비를 넉넉하게 받는 미국과 호주 선교사들이 부러웠습니다.

하디는 부산에서 이제 막 선교 사역을 시작한 호주 선교사들에게서 ‘우리도 의로 선교사가 필요하니 함께 일하자’는 유혹 같은 제안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선교사로 파송해 준 토론토의과대학 학생들과 약속을 깨뜨릴 수 없었습니다.

그 무렵, 본국 학생선교회에 보낸 하디의 편지입니다.

“나의 기도는 나를 믿어 주신 분들께 신뢰를 잃지 않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외 선교지 어느 곳이든 원하시는 곳으로 보내실 것이라는 확신만 가지고 왔을 뿐입니다. 어디를 가든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

평신도 독립 선교사로 내한한 하디가 선교지에서 처음 당한 시련은 밖에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선교사들과의 비교를 통해 느낀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 ‘땅 끝’에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이었습니다. 그런 중에 그를 붙들어 준 것은 자신을 파송한 본국 학생들의 기도와 힘들때마다 읽은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난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 (고후8:9, 새번역)

당시 세상에 땅 끝이었던 조선에 왔던 선교사님들의 고민과 어려움은 했던 사실 100여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 어려움은 경제적 어려움과 인간적 외로움, 그리고 비교의식이었습니다. 고민이 비슷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육신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없이 사는 삶과 다른 결정적 이유는 우리에게 예수가 있기 때문이요, 예수님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명이 때론 나를 버겁게도 하지만, 그 사명 때문에 살게 합니다.

오늘 우리를 살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평강과 사랑이 우리 삶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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