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3 대림절 넷째 주 12/19 월요일

“왕의 결정”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누가복음 2:8-11)

성탄절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결정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무엇을 새로이 결정하셨는지 잘 아시겠지요?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1절)

여기서 말하는 왕은 로마 황제 카이사르나 예루살렘의 헤롯이 아닙니다. 본디오 빌라도도 아니고, 대통령이나 총리, 권력자, 장군도 아닙니다. 세상이 새로운 방향을 향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큰 성읍이 아닌 가난한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왕이 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약속을 취소하시지 않습니다. 이미 천 년 전에 다윗의 자손을 지켜 왕으로 세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진찌 왕을 보내시겠다고, 그 왕이 온 세상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때는 두려움이 기쁨으로, 억압이 정의로, 고통과 슬픔이 온전함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왕들은 왕좌를 지키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들은 공포에 싸인 나머지 어떤 사람이든, 어떤 것이든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죽이거나 두려움의 대상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고, 인간의 역사는 그런 일들로 가득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새로운 결정을 내리실 수 있었습니다. 이 새로운 약속은 위협이 아닌,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혼자서는 어찌하지 못하는 아이 말입니다.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우러러볼 만한 모습이 아니기에 세상이 그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분은 왕입니다. 영광의 광채가 아닌, 아기 옷을 입으셨습니다. 왕궁의 화려한 방이 아니라 누추한 외양간에 누워 있습니다. 이 모두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어떤 형식이나 공식으로 삶을 설명하려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성탄절을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새로운 결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베들레헴의 아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새로운 왕이 오심으로 새로운 세상이 선포되었습니다. 이를 전달한 주의 사자 곁에서 천사들의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결정을 영광과 평화로 노래합니다.

성탄절은 예산과 계획, 법칙으로 가득한 우리의 ‘멀쩡한’ 세상을 떠나서, 잠시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기도

변함없이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에 거룩한 능력으로 불쑥 찾아오소서.

우리의 구습과 생각을 깨뜨리시고,

천사들이 노래하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우릴 변화시키소서.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