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20 대림절 셋째 주 12/16 금요일

“천국의 법칙”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65:17)

천국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어색하고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느끼실 겁니다.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없다면, 누구든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겁니다. 거의 모든 사람은 천국이라는 주제를 따분하거나 자기와 상관없는 공허한 이야기라고 치부합니다.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주제가 이미 오래전에 정리되었기 때문에 다시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주제가 자기들과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소외된 자들’에게 다가가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사야가 자신의 시적 은사를 천국을 이야기하는데 할애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특히 그의 공동체가 목전에 다다른 절망과 낙심에 떨고 있을 때 본문의 말씀처럼 예언한 것이 이상하지 않나요?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여겼습니다.

새로움에 있어서 반드시 인정해야 하는 부분은, 우리가 대하는 하나님이 새로운 분이라는 사실, 과거 제국을 다스리던 전통적인 의미의 신이 아니라는 점을 용감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는 하나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천국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천국의 하나님을 절대적인 힘을 가지 이기적인 존재, 원하는 대로 마음껏 소유하거나 빼앗아가는,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을 가진 자본주의적 소비자로 여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유지한채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신과 경제를 운영해 갑니다. 지구상의 가난이라는 문제는 인간의 탐욕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합리화하는 우상을 무너뜨리기 전에는 완전히 극복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새 소식은 높은 곳에서부터 새 힘이 내려와 다스린다는 것, 그 하나님의 계획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위 예언의 말씀은 우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예언은 몇몇 사람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부자가 되는 부자연스러움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확언합니다. 그런 부자연스러움이 지속될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에는 끝이 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조만간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냉소적으로 비웃고 냉담해지거나 무심코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굴복할 사람이 아니라 정의의 새로운 시대를 향해 도전할 사람들입니다.

기도

하나님, 조만간 당신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압니다.

새 하늘을 따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을 압니다.

그래서 그 날을 바라며 기다립니다.

우리가 계속 그 나라에 관심을 갖도록 도우소서.

정당하지 못한 부자연스러운 처사를 극복하도록,

당신의 새로움을 향해 계속해서 도전하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더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