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교회

No.18 대림절 셋째 주 12/ 14 수요일 “상실 너머 불어오는 바람”

No.18 대림절 셋째 주 12/ 14 수요일

“상실 너머 불어오는 바람”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사야 11:1-2)

하나님께서는 죽은 것처럼 보이는 뿌리에서도 새로움을 불러일으키십니다(1절). 바람을 통해서도 새로움을 불러일으키십니다. ‘성령’이라는 바람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선사합니다. “여호와의 영이 ……. 강림하시리니”(2절) 태초에 바람이 불어 마른 땅과 물이 나누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바람으로 임하사 세상이 시작되었습니다(창1:2). 아브하함의 자손이 모두 실패하여 더 이상 그 뒤를 이을 자손과 미래가 없어질 수 있는 절망의 순간에도 함께했던, 그 바람은 능력과 권세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마 3:11). 이 바람은 절망과 불신을 멀리 날려보리고 그 대신 능력과 용기로 채워진 교회를 세웁니다(행 2:2-4). 그 바람으로 이 세상이 창조되었고, 예수님이 능력을 입었으며, 교회가 현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우리가 제대로 설명할 수도, 통제하거나 초청하거나 저항할 수도 없는 이 바람을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나 가족, 사업, 왕조, 심지어 이 세상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최선이라고 계획했던 것들이 힘을 잃고, 쓰러지고 영원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프지만 한계가 분명히 보입니다. 그런데 위의 예언에서는 스스로 존재하는 분의 시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너무나 희귀합니다.우리의 믿음은 이 놀라운 말씀의 가슴 아픈 결말을 부인하려 합니다. 대림절은 예언서 말씀을 상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그 말씀이 너무 뻔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현실주의에 안착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해서든 결과를 늦춰보려 애쓰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은 우리는 상실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예언자가 위에서 그리는 비전과 가능성을 기대합니다. 아니, 그보다 하나님의 창조하시며, 생성하시며, 치유하시며, 변화시키는 그분의 바람을 기대합니다. 상실 너머에는 새로움이, 죽음 너머에는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혼돈 너머에는 새로운 창조가, 그리고 그 너머에는 바람이, 하나님의 영이, 예언이, 새 생명이 있습니다. 바람처럼 불어오는 새로움은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반응하며, 받아들이며, 회개하며, 좋은 열매를 맺으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선물을 우리의 언어로 마땅히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선물과 그 바람을 깨닫고, 그것을 바라며,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사자와 뱀, 양, 모든 창조물과 함께 나아갈 때, 오직 그 바람으로 인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다윗의 자녀를 통해 불어오는 그 바람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새 생명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기도

바람의 하나님,

당신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에

우리가 다시 한 번 반응할 수 있게 하소서.

우리는 한계를 잘 압니다.

과거의 현실을 지탱하려 애쓰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도 잘 압니다.

이번 대림절에는 새로운 시작으로 우리를 자유케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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