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교회

05 대림절 첫 주 12/ 01 목요일 “쇠하여야 할 때”

05 대림절 첫 주 12/ 01 목요일

“쇠하여야 할 때”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이사야 35:25)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30)

대림절이면 그다지 반갑지 않은 헝클어진 모습의 세례 요한이 찾아옵니다. 기억나십니까? 털옷을 입고 들판에서 메뚜기나 석청 같은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그 사람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거침없이,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단 한 가지만 말할 뿐입니다.

“회개하라!”

이 말은 눈앞에 닥친 위험한 상황을 깨닫고 돌아서라는 말입니다. 그는 무척 긴박한 심정으로 이 세상을 대하지만, 새로움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긴박한 위험을 느끼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세례 요한은 복음서 이야기의 첫머리에 등장합니다. 예수님보다 앞서 말입니다. 사실 요한은 대림절 이야기의 주요 인물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그분의 위대하심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요한 자신을 포함하여 이스라엘의 이전 세대와 그들이 갖고 있던 희망,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대림절 이야기에 등장하자마자 요한은 재빨리, 뜻밖에도, 전혀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대림절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사야의 거대한 예언으로부터 눈을 돌려 요한의 작은 가르침을 보십시오. 성탄절을 향한 길목에 선 대림절, 요한이 의미하는 과거의 예수님이 의미하는 새로움을 음미해 보십시오. 쇠하는 것, 흥하는 것, 우리 삶에서 묵은 것, 습관적인 것, 파괴적인 것은 쇠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삶을 주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커질 수 있습니다. 삶을 위한 나눔과 단순함이 흥하려면 탐욕과 소비주의는 쇠해야 합니다.

대림절을 맞아 성탄절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사야의 거대한 예언으로부터 요한의 작은 가르침으로 눈으로 돌려보시기 바랍니다. 요한이 과거를 의미하고 예수님이 새로움을 의미한다면, 성탄절로 나아가는 대림절에는 이 두 가지를 음미해 보길 원합니다. 쇠하는 것, 흥하는 것!

우리 삶 속에 묵은 것, 습과적인 것은 쇠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삶을 주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확장됩니다. 생명을 살리는 나눔과 단순함이 흥하려면 탐욕과 소비주의가 쇠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자비와 넉넉한 마음이 흥하려면 두려움과 방어적 태도가 쇠해야 합니다. 나 자신과 이웃에 대해, 그리고 우리 사회의 병폐와 그것들의 실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태도가 흥하려면, 위선과 거짓은 쇠해야 합니다. 치유와 용서가 흥하려면, 분노와 따돌림이 쇠해야 합니다. 결국 그것만이 생명의 근원입니다.

대림절은 위대한 것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우리는 매일매일 훈련을 받습니다. 그 훈련은 고되고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대림절은 그저 쉽게 기다리기만 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수많은 요구사항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고, 앞서 말한 것들이 날마다 쇠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과 하나님의 평화가 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대림절에는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셔서 회개라는 어려운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우리 삶 속의 묵은 것, 습관적인 것, 파괴적인 것은 쇠하게 하셔서

새로운 삶을 주시는 에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확장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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